의견/칼럼 성경 교리 문답. 원죄와 실제 범죄에 대하여

아래의 글을 읽고 마음에 남는 씁쓸하고 달콤한 느낌은 무엇입니까? 질문의 본질과 동떨어진 답변을 드리려 한다면 차라리 침묵을… 인간이 창조한 신학의 본연의 목적인 요한복음 3장 16절의 의미를 거스르는 죽은 인간. 이것은 사람이 만든 신학이 기록된 성경보다 더 권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상관없는 첫 사람 아담의 씨로부터 난 인간의 씨는 이미 사도들에 의해 예정되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은혜의 복음이냐? 아니면 저주받을 또 다른 복음인가?” (참고, 갈라디아서 1:9) 성경 기록에는 삼위일체라는 명확한 표현이 없지만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는 것처럼 성경 기록에는 휴거라는 표현이 없지만 우리가 믿는 것처럼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대로 “예수의 신성”이란 표현이 없고 “하나님=말씀이요 말씀이 곧 하나님이요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되 안타깝게도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성도들은 절반만 믿습니까? 필드 수가 70%를 넘어섰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사실로 확인된 것도 벌써 오랜만이다. 더욱이 이들 70%는 창세기 1~3장의 말씀을 창조주 하나님의 실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이 가공한 신화라고 믿는다. 뉴스입니다. 그들의 중심 생각은 단순히 그들이 예수를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에 알려진 4대 성인 중 하나로 인정한다는 결론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세상에 넘쳐나는 종교 다원주의자들이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4대 성자 중 어느 한 분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기록된 경전은 사람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책이 아닌데 왜 예정 문제를 피했는가? 신학이 바른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보면 씁쓸합니다. 예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이 기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것은 우리 인간이 지옥에 가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여호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말씀(참고, 도박, 술, 간음 등)에 순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단 한 가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씀을 거부하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의견/칼럼 성경답변죄와 자범죄 | 입력: 2018.10.07 17:34

(박진호목사신앙교리문답(박진호목사 교리문답)은 매주 1회 연재됩니다. 미국 남침례교 목사로 멤피스 커비우즈 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에 있는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로, 이 논문은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이며, 저자의 요청에 따라 그의 웹페이지 하단에 기사가 게시된 날짜가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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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님은 우리를 예정하시고 그 뜻대로 구원을 이루시는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나중에 죽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면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핑계할 수 없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아담과 해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존재가 되어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구원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심판대에 서지 못한다면 억울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까? 물론 원죄와 자신의 대인범죄로 심판을 받게 되겠지만 결국은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스스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원죄는 조상의 죄에서 물려받은 죄이고, 자범죄는 타락한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이므로 나중에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판단의. A) 많은 신자들이 믿고 나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의심입니다. 예정과는 별개로 죄의 본질과 구원의 관계가 온전히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은 교회가 우리에게 죄는 단지 도덕적인 악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죄의 본질 성경이 말하는 죄와 심판의 관계는 다른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과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다릅니다. 원죄와 결과적 범죄가 윤리적 범주에 남아 있다면, 이 문제와 같은 의심은 타당합니다. 즉, 예정되지 않은 것만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면 그 잘못이나 불공정과 불합리의 책임은 반드시 하나님 편에 지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을 부인하고 불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너무 오만하고 완고하게 인간으로서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여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은 집요한 습관이자 성향입니다. 우리는 언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우리 자신의 욕심과 감정과 고집대로 합니다. 앞선 기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도덕적으로 선하고 종교적으로 경건한 것까지도 하나님 앞에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여 모든 인간이 원죄 아래 태어났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부모의 죄를 물려받고 그것을 반복해서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살인강도범이라고 해서 자식도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게 이해하면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책임이 없고, 우리에게 책임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또 죄를 짓고 난 악한 마음의 밭을 상속받는 것은 원죄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자신을 높이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습니다. 창조주로서 살아 역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외면하고 오직 사랑으로 인간을 대하는 본성입니다. 대신 인간 자아가 그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땅에서 사는 데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가 필요 없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창조주가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사람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3장을 반드시 천천히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그들에게 알게 하셨고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장) :18-20). 비록 우리가 하나님을 외면하는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장엄함과 섬세함과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볼 때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부인할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그랜드캐년과 같은 자연의 웅장함을 보거나 천둥번개와 같은 엄청난 힘을 경험할 때 우리는 이 땅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모든 인간에게는 공통된 도덕적 양심이 있습니다. 아무리 미개한 종족이라 할지라도 체계적인 도덕 교육을 받지 못하였더라도 인간 관계의 십계명(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 증언, 탐욕 금지)과 같은 윤리 의식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자연재해를 겪을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유한한 존재인지 알게 되고, 궁극적인 절대자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조물로서 우리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제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나아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감사와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도, 구하지도, 경외하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형통과 안위와 쾌락만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대신 동물 모양의 우상을 만들어 음란하게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썩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짐승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본성과 내면을 살피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타락 이후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인류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원칙과 더불어 원죄로 인하여 끝까지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방법에 주목해야 합니다. 극심한 고통에 대한 추가 페널티가 없습니다. 그들은 잃어버린 마음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자기를 높이고 모든 윤리적 죄가 이것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런 추악한 죄가 지상에서의 형벌이라고 합니다. (롬 1:24-32) 사실 많은 불신자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형벌을 받지 못한 채 사치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돈이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에 수단과 상관없이 돈을 모아 부자가 된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대대로 모든 믿는 자들의 불만을 대변하며 하나님께 왜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지 물었습니다. 안돼. 별도의 처벌이 아닙니다. 물론 그들을 기다리는 곳이 극심한 고통, 즉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불 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반드시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도로 고통스럽고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러한 형벌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상태로 죽은 뒤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물질이 모든 것을 주관하므로 부자처럼 살며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그는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요한복음 3:16-21) 그가 구원과 심판에 대해 말한 것을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기독교 교리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곧 유일하신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며 완악한 죄인이라도 진실한 겸손과 굴복으로 하나님께 돌아오지 아니하는 것)은 이미 저주 받은. 정죄는 세상에서 빛이 아닌 악 가운데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이 자기 뜻과 고집대로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이 형벌입니다. 하나님은 별도의 형벌이 아니라 그대로 두셨고, 형벌은 죽은 뒤에도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 불신자는 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벌을 받는지 의아해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시작된 이래 나는 신과 관련된 사고 활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며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인생을 바르게 누리며 사는 길이라는 굳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뒤에도 계속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에서 그런 불만이 생길 수 있지만 그동안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철저히 깨달았거나 이미 너무 늦게 후회했습니다. 성향상 자범죄와 원죄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윤리적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결과입니다. 원죄 아래서 태어나 하나님께 반역한 모든 사람의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자기를 높이고 단장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기 때문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이 땅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시기, 폭력, 살인, 간음, 강도, 도둑질, 분노, 미움, 저주, 테러, 전쟁 등은 반면에 신자가 된 후에는 죄에 매우 민감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가끔 죄인 줄 알면서 죄를 짓고(자범죄), 회개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요 또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 1:9,10) 신자는 죄의 본성이 살아 있는 동안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용서함을 받은 죄인입니다. 우리는 종종 죄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알면서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회개하면 됩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어 영적 핍박을 일으키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기까지 하십니다. 점차적으로 자기 범죄를 저지르는 빈도와 강도가 훨씬 줄어듭니다. 조금씩 우리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죄를 온전히 회개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건축을 계속한다면 반드시 심판이 아닌 징계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피 흘릴 때까지 대항하지 아니하는도다. . . . 모든 형벌을 받았으나 받지 아니하면 사생아요 친자식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4&8) 그 외에도 그는 아직 예수를 믿어 구원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성경요리문답 사이트 상단의 “예수 믿고 나서 범한 죄와 구원의 관계” 공지를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진호 목사

신자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형벌 대신 (영원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질문자가 우려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자기 범죄도 죄의 본성(하나님을 거역하는 습관)에 기인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바로 그 본성을 죽이는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개인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죄를 지을 때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성령님의 강력한 개입으로 언젠가는 회개하게 됩니다. 요컨대, 이미 개인 범죄를 저지른 신자에게는 심판이 임하지 않습니다. 회개하고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는 것은 천주교의 영향을 받은 비성경적인 사상입니다. 불신자들에게는 모든 죄가 개인적인 죄인 경우와 죄인 줄 모르고 누리는 경우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유대인들도 예수님이 오시기 전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의 이방인들과 같은 영적 상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남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전파하는 네가 간음하지 말라 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당신은 나를 모욕합니까?” (로마서 2:21-23) 율법을 알고도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개인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였습니다. 즉,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윤리적 죄를 지었다고 해서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원죄 아래 태어나 윤리적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심판을 받을 것인가를 논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죄(원죄와 도덕적 죄를 포함하지만 특히 하나님께 대한 죄)를 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은혜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따라 심판과 구원으로 나뉜다. 끝까지 거절하는 자에게는 죽은 뒤에도 그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심판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불공평함이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장 죽어 마땅한 자들을 이 땅에서 호화롭게 살게 하셨습니다. 판사로서 부당하거나 알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인정은 없으나 순전히 논리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이 땅에 심판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신자의 경우 자해에 대한 징계가 있어도 심판이 없습니다.2018/9/18